DATE : 2024-06-20 07:47:04 / HIT : 36  제 목 나만의 노하우 취지와 응모기 파일#1 나만의 노하우-발표 문인희.jpg [1.86 MB] 파일#2 문인희-나만의 노하우 3위 입상.jpg [120.0 KB] 전국 의사선생님들의 숨은 진료 노하우를 모으면 얼마나 더 잘 진료할 수 있을까? 몇차례 시도하다 중단된 노하우 발표회를 작년부터 이비인후과 의사회에서 다시 시작했다. 올해에는 전국 고수들의 어떤 진료 노하우가 소개될지 올 8월 개원세미나가 매우 기대된다. **************                                  나만의 노하우 취지와 응모기                                                           비전이비인후과의원 원장 문인희 아침에 진료를 막 시작하려고 준비하는데 대기실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리더니 피에 흥건히 젖은 수건으로 코를 감싼 노인이 들어섰다. 직장인과 학생들 여러 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급한 환자라 얼른 진료실 의자에 앉히고 응고된 핏덩어리를 석션하면서 들여다보니 우측 K-area에서 active bleeding이 되고 있다. 기다리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얼른 packing하고 다음 환자를 보는 게 순서겠지만, 이 노인의 코를 막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이 환자는 왼쪽으로 비중격이 엄청 휘어 있어 오른쪽 코를 막으면 당분간 코로는 숨을 쉬지 못하게 될 것인데, 차마 이 노인에게 하루 종일 코로 숨 쉬지 못하는 형벌 같은 고통을 주는 것은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대학 2학년 때 코막힘이 너무 심해서 비중격만곡증과 비갑개 수술을 받았다. 동네 이비인후과 원장님은 수술 후에 피가 나지 않도록 엄청난 거즈를 콧구멍 속에 꽉꽉 채워 넣었다. 요즘은 코 수술을 하더라도 하루 이틀만 코를 막아두는 정도이지만, 당시에는 일주일에 걸쳐 거즈를 교체하면서 조금씩 제거했는데, 일주일이나 코로 숨을 쉬지 못하니 자면서도 수십 번씩 깨게 되고 말도 편히 못할 뿐 아니라, 입은 바짝 마르는데 양쪽 코를 막아 놨으니 침을 삼키기도 물을 마시기도 어려워서, 그 일주일은 지옥의 형벌이라 할 만큼 고통스러웠던 기간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웬만해선 코피 환자의 코를 막지 않는다. 지혈된 상태의 혈관을 지지는 것은 쉽다. 그러나 active bleeding이 있는 상황이라면 석션을 하면서 시야를 확보하고 동시에 출혈 부위를 electrocauterization을 하기 위해서는 ‘suction cautery’가 필요하다. 웬만한 규모의 종합병원이라면 suction cautery가 있겠지만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일 년에 한두 번 사용할 지도 모를 비싼 장비를 구비해 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개원 초기에는 코피가 콸콸 나는 환자들은 일단 packing하고 그 이후에는 상급병원에 가서 치료받도록 의뢰했다. 당장의 상황은 해결했지만, 환자는 대학병원 교수님한테 진료를 받을 때까지 며칠이고 코를 막고 지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대학생 때 코 막는 형벌 같은 고통을 겪어본 경험자의 입장에서 참으로 내키지 않았다. 개원초에 suction cautery가 없이도 코 혈관을 안전하게 소작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코피를 석션하면서 소작을 하려면 석션 팁에 절연체를 두르고 절연체가 없는 부위에 전기 소작을 하면 되는데, 절연체로 싸여진 석션 팁을 별도로 구할 수가 없었다. 코 석션 팁에 꽉 맞는 플라스틱 튜브를 끼우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야쿠르트 빨대를 자른 후에 소독해서 코 석션 팁에 끼워보니 꼭 맞았다.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가성비 좋은 suction cautery tip이 만들어졌다. 얼른 노인을 처치실에 옮겨 미리 만들어놨던 비장의 무기 ‘야쿠르트 빨대 suction cautery tip’으로 지져서 지혈했다. 사색이 되어 허겁지겁 들어왔던 노인은 금세 평화로운 얼굴로 집으로 갔다. 기가 막히게 저렴하고 성능 좋은 석션 코테리 방법을 혼자만 알기 아까워서 후배들에게 ‘야쿠르트 빨대 석션 코테리’ 방법을 알려주니 20여 년 전 이비인후과 개원 노하우 대회에 발표해서 1등상을 타면서 전국 이비인후과 선생님들한테도 알려졌다. 그러자 야쿠르트 빨대 대신 절연 테이프나 압축 비닐을 석션 팁에 싸서 미리 소독해 놓으면 된다는 아이디어, malleable suction tip에 절연 테이프를 붙이면 꺾어진 구석에서 나는 active bleeding의 지혈에도 유용하다는 한층 진보된 방법들이 나왔다. 이제 전국의 코피 환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코를 틀어막는 고통을 받는 대신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엄청 수월하게 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개원 노하우 대회는 단발성 행사에 그치고 말아서 더 이상 다른 노하우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선배님들을 만나보면 오랜 진료 경험을 통해 빛나는 나름의 노하우들이 있다. 교과서나 논문에 실리지 않은 진료 비법들이다. 전국 이비인후과 선배님들의 숨어 있는 귀한 노하우들을 정리해서 더 많은 의사가 알게 하고 더 많은 환자들이 더 잘 치료받을 수 있다면... 이비인후과 의사회보 편집을 맡으면서 십여 년 동안 전국의 대가 선배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진료 비법들을 청해 듣고 ‘선배님께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정리해서 회보에 실었다. 언젠가 내가 진료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전국의 진료 노하우들을 계속 소개하고 공유할 수 있는 창구를 제도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집행부에 큰 상금을 걸고 전국의 진료 비법을 모아보자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작년에 다시 이비인후과 개원세미나에서 ‘나만의 노하우 콘테스트’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하게 되었다. 너무 오랜만에 하는 행사다 보니 회원들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참여가 저조하다며 집행부에서 걱정이 많기에 나도 노하우를 하나 제출했다. 알레르기 비염에서 안과 합병증이 덜 생기는 triamcinolone 점막하 주사 방법, 종이 클립을 이용한 비강내 이물 제거법, 귀 석션 팁 끝에 양면 테이프를 붙여서 고막에 붙은 이물을 제거하는 방법, angiocatheter를 활용해서 귀 피어싱을 하는 방법 등등... 내가 발표한 ‘편도결석을 쉽게 제거하는 신박한 방법’은, 창의적이고 재치 있는 경쟁작들이 너무 많아 1등은 못하고 3등에 입상했다. 편도결석이 목에 끼어 있는데 제거가 안돼서 아주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목에서 계속 냄새가 나니 학생 중에는 학기가 시작되어 새 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주눅이 들어 말을 제대로 못한다는 경우도 있었고, 더 심각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멋진 청년이 편도결석 때문에 많이 불편하다며 편도수술 상담을 하러 왔는데, 입천장을 보니 cleft palate op. scar가 있었다. “구개열이 있었던 분들은 입천장 근육이 약해서 편도수술을 하게 되면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많아 편도수술 금기에 해당합니다. 편도결석이 생길 때 마다 임시로 제거하면서 지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청년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 낙담하듯이 말했다.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었는데, 여러 번 만나도 입냄새가 날까봐 키스를 하지 않으니 왜 그러냐고 자꾸 캐묻는데 제대로 대답을 못하니까 저를 오해하게 되고... 결국 헤어졌습니... 흑흑...” 말을 맺지도 못하고 청년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동안 편도결석을 그냥 불편한 증상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내게 그 청년의 눈물은 큰 충격이었다. 편도결석은 한 청년의 젊은 날을 압도하며 괴롭히고 있었다. 편도결석을 제거하기 위해 석션을 갖다 대면 구역질을 하거나 주변 점막들이 같이 딸려 나오면서 석션 입구가 막혀 버려서 제거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억지로 빼다 보면 주변 점막이 다 헐어서 또 다른 고통을 주기도 한다. 편도결석이 있다고 모두 편도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전하고 간편하면서 확실한 제거방법이 없을까? 당구를 배울 때는 밥상의 밥그릇, 국그릇이 당구공으로 보였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진료실에서 울음을 터뜨렸던 청년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온종일 편도결석을 안전하고 쉽게 제거하는 방법만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가을 날, 미화원이 바람 뿜는 장비로 낙엽을 날려서 청소하고 있었는데, 날아가는 낙엽뭉치가 갑자기 편도결석이 날아가는 모습처럼 보였다. 편도결석도 억지로 빼내려고 하기보다 저렇게 날려버리면 어떨까? 이비인후과 유닛에 있는 이관통기장치로 바람을 뿜어 낼 수 있다! ant. pillar에 닿지 않도록 귀 석션 팁 끝을 살짝 구부려서 이관통기장치에 끼워서 tonsil crypt에 바람을 뿜어 보면 어떨까? 이런 궁리 끝에 탄생한 ‘신박한 편도결석 제거방법’은 ‘나만의 노하우 콘테스트’에서 많은 분들의 호평을 받았다. 비록 나는 3등에 그쳤지만, 콘테스트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집행부에서 ‘나만의 노하우 콘테스트’를 앞으로 매년 열도록 하겠다는 뜻을 전해 들으니, 전국의 노하우를 모으고자 오래전부터 간절히 바랬던 숙원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나의 노하우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마음이 흐뭇하다. 어리석은 자는 진리에 감탄하고 영리한 자는 진리를 이용한다고 했던가. 발표된 노하우들이 집단지성의 힘을 빌려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올해에는 전국 강호의 더 많은 진료 비법들이 알려지고, 더 많이 활용되어 더 많은 환자들이 더 잘 치료받을 수 있기를, 오늘 내가 살아간 세상이 내일은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당연히 패배다. 시작이 반이다. 실천하고 도전하라. 아무것도 안하면 무조건 패배다. 시간만 허비하는 사람은 패배자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라. 고통스럽지만 그래야 배우고 성장한다. 용기란 숭고하고 가치 있는 목표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다.                                                      - ‘퓨처셀프(벤저민 하디 저)’ 중에서 총게시물: 4 총페이지: 1 현재페이지: 1 번호 제목 날짜 조회 4   나만의 노하우 취지와 응모기 24-06-20 36 3   강산이 두번 변하는 동안 21-05-12 561 2   할머니의 새벽 - 보령의사 문학상 금상 (문인희 원장) 17-12-12 826 1   제대로 진료받는 요령 08-01-12 3580 1